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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도 봄날은 온다
태그 (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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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립션 (250자 내외)
엄마에게도 다시 사랑이 올 수 있을까?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그녀에게 찾아온 뜻밖의 설렘.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그녀는 다시 한 번 사랑을 꿈꿀 수 있을까? 황혼의 나이에 피어난 따뜻한 로맨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의 시작.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 찾아온 두근거림 속에서, 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후킹멘트 (300자 내외)
"엄마에게도 사랑이 올 수 있을까요?"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아온 그녀. 젊은 시절의 꿈과 사랑을 뒤로 한 채, 오직 가정을 위해 희생했던 시간이 어느새 황혼을 맞이했다. 하지만 인생은 뜻밖의 순간에 새로운 페이지를 펼쳐준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이 다시 찾아온다면? 엄마라는 이름이 아닌, 한 여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감정, 황혼의 로맨스가 이제 시작된다.
지금까지의 삶
따스한 햇살이 거실 창가로 스며들었다. 소박한 아파트의 작은 화분에도 아침 햇살이 내려앉으며 부드러운 빛을 만들어냈다.
이곳에서만도 20년, 그녀는 아이들을 키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이제, 아이들은 모두 제 갈 길을 찾았다. 큰딸은 결혼해서 외국으로 떠났고, 막내아들은 회사에 다니느라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집은 텅 빈 공간이 되어버렸다.
"엄마, 주말에 시간 되면 같이 식사할까?"
"네가 바쁠 텐데. 시간 되면 연락해."
늘 그런 식이었다. 아이들은 언제나 바빴고, 그녀는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울리는 짧은 신호음이 남긴 허전함은 어쩔 수 없었다.
결혼 후, 가정에만 매달리며 살았던 세월.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쁜 나날이 계속됐다.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그녀에게는 가족이 전부였기에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창밖을 바라봤다. 길을 걷는 사람들, 아이들과 함께 웃는 젊은 부부, 어딘가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그녀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나는 언제부터 나를 위해 살아본 적이 있었을까?
그녀의 하루는 단조로웠다. 아침에 일어나 가벼운 청소를 하고, 텅 빈 부엌에서 혼자 식사를 차려 먹고, 오후에는 동네 슈퍼를 다녀오거나 근처 공원을 걷는 것이 전부였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대화의 주제는 늘 아이들 이야기로 끝났다.
"우리 딸, 이번에 회사에서 승진했어."
"아들이 새 차를 샀다더라."
"손주가 벌써 유치원에 들어갔다니까?"
그녀도 예전에는 그런 이야기 속에 함께 웃었지만, 이제는 대화 속에 자신이 없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딸과 통화를 하던 중 딸이 문득 물었다.
"엄마, 요즘 뭐 하고 지내?"
그녀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뭐, 그냥… 잘 지내지. 집에서 TV도 보고, 산책도 하고."
"엄마도 좀 재미있는 일 만들어 봐. 여행도 가고, 동호회 같은 것도 나가 보고."
"여행은 혼자 가기 그렇고, 동호회는… 아직 잘 모르겠어."
딸은 무심한 듯 말했지만, 그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 두드렸다. 재미있는 일…? 내게 그런 게 있었나?
그날 밤, 그녀는 오래된 사진첩을 꺼냈다.
젊은 시절, 사랑했던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소풍을 갔던 사진. 그리고 가장 아래쪽에서 나온 건, 그녀가 결혼하기 전에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그녀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손에 들린 것은 작은 수첩과 펜.
'여행 가고 싶은 곳 리스트'라고 적힌 수첩의 첫 장이 보였다.
"아, 맞다. 그때는 이런 걸 적어 놓기도 했었지."
그녀는 가만히 사진을 쓰다듬었다. 어느새 기억에서 지워졌던, 그녀가 좋아했던 것들.
그녀는 누구의 아내였고, 누구의 엄마였고, 누구의 며느리였지만…
정작 한 사람으로서의 자신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창문을 열었다. 밤공기가 차갑게 피부를 스쳤다.
멀리서 가로등 불빛이 반짝였다.
'이렇게 그냥 살아도 괜찮은 걸까?'
그녀의 가슴속에서 잊고 있던 감정이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히 움트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직도 '엄마'로서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제는 조금쯤 '나'를 찾아가도 괜찮은 걸까?
그녀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무언가가 변하려 하고 있었다.
뜻밖의 만남
"네? 어머님, 이거 떨어뜨리셨습니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오후, 그녀는 늘 가던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몇 장의 메모지와 작은 책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는 멍하니 바람을 맞고 있었다. 문득 손에서 종이가 바람에 날아가 버렸고, 그녀가 놀라 일어나려는 순간 누군가 그 종이를 주워 내밀었다.
고개를 들자, 낯선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였지만 단정한 모습이었고, 인상이 부드러웠다.
"아, 감사합니다."
그녀는 황급히 종이를 받아들었지만, 남자는 그대로 서서 미소를 지었다.
"여행 가고 싶은 곳 리스트인가 보네요."
그녀는 순간 놀랐다. 그가 종이 위에 적힌 글씨를 본 것이었다.
"아, 네… 오래전에 적어놓았던 건데, 그냥 한 번 다시 꺼내 봤어요."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 벤치에 앉았다.
"좋은 취미입니다. 저도 예전에 그런 리스트를 만들어 본 적이 있거든요."
그녀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세요?"
"네. 그런데 실은 한 군데도 못 가봤습니다. 일이 바빠서, 가족 때문에, 또 여러 가지 이유들로… 계속 미뤄왔죠."
그녀는 그 말에 묘한 공감을 느꼈다. 자신도 그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은 언제나 '나중에'로 미뤄졌다.
"지금은 어떠세요?"
그녀가 조심스레 묻자, 남자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고 핑계를 대려나요. 하지만 가끔은 후회가 됩니다. 그렇게 미뤄둔 시간들이…"
그녀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리스트를 만들었지만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런 그녀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 나이가 뭐 어때서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혹은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이유로 포기했던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정말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그 남자는 자신을 "정우진"이라고 소개했다. 은퇴한 건축가였고, 아내를 일찍 떠나보낸 뒤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그의 자녀들도 독립한 지 오래였고, 그는 오랜만에 자유를 느끼고 싶어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했다.
"혼자서 여행을 떠날까 고민 중이었는데, 역시 혼자는 좀 그렇더군요."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도 그래요. 막상 가보려 해도 망설여져서요."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조금씩 공감을 느꼈다. 어쩌면 비슷한 처지였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그녀는 공원에서 우진을 자주 마주쳤다.
"오늘은 바람이 좋아서 나왔습니다."
"그렇죠? 이렇게 좋은 날은 그냥 집에 있기 아까워요."
그들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공원 근처를 함께 산책하기도 했다. 서로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편안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진이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다음 주에 시간 괜찮으시면, 함께 가까운 곳이라도 가보실래요?"
그녀는 예상치 못한 제안에 순간 당황했다.
"가까운 곳이라뇨?"
"서울 근교라도 좋고, 아니면 그냥 바닷가를 보러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녀는 망설였다. 이런 제안이 처음이었고,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가슴 한쪽에서는 이상하게도 두근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나가도 괜찮을까?… 하지만, 정말 괜찮은 걸지도 몰라.'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답했다.
"좋아요. 한번 가볼까요?"
그렇게, 그녀의 오랜 일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만남과 함께, 그녀의 가슴속에도 아주 작은 설렘이 피어나고 있었다.
가족의 반응
그녀는 깊은 고민 끝에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웬일이야?"
딸의 목소리가 반갑게 들려왔지만, 그녀는 망설였다. 손에 들고 있던 차잔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주말에 잠깐 볼 수 있을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응, 당연하지. 엄마, 무슨 일 있어?"
"그냥… 오랜만에 얼굴 보고 싶어서."
딸과의 만남은 오랜만이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통화만 간간이 이어졌지만, 이번에는 직접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말, 그녀는 평소보다 조금 신경 써서 옷을 입었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손질하며 문득 혼잣말을 했다.
"나… 괜찮을까?"
그녀는 어쩐지 긴장되었다.
카페에 들어서자 딸이 먼저 와 있었다.
"엄마!"
밝게 인사하는 딸을 보며 그녀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 언제나 씩씩했던 딸,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자리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엄마가… 요즘 새로운 친구를 만났어."
딸은 눈을 깜빡였다.
"새로운 친구?"
"응, 공원에서 우연히 알게 된 분인데… 가끔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고 그래."
딸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혹시… 그분이 남자야?"
그녀는 순간 말이 막혔다. 그러자 딸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엄마, 왜 그렇게 놀라? 아니면 정말… 연애라도 하려는 거야?"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니, 그냥 좋은 친구일 뿐이야."
"엄마, 친구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긴장한 거야?"
딸은 진지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엄마, 솔직히 말해도 돼. 엄마가 행복하면 난 반대할 이유 없어."
그녀는 그 말을 듣고 놀랐다. 아이들이 자신을 걱정할 줄만 알았는데, 정작 딸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말… 괜찮을까?"
"엄마, 지금까지 나랑 오빠만 생각하고 살았잖아. 이제 엄마도 좀 행복해야지."
그녀는 예상치 못한 딸의 반응에 가슴이 찡했다.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며칠 뒤, 그녀는 아들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아들은 정반대 반응을 보였다.
"엄마, 농담이지? 이 나이에 무슨 연애야?"
"그냥… 좋은 친구라고 했잖아. 가끔 만나서 대화 나누는 정도야."
"그게 바로 문제야. 괜히 이상한 사람 만나서 상처라도 받으면 어쩌려고 그래?"
아들의 얼굴에는 걱정과 불만이 섞여 있었다.
"엄마가 무슨 연애 소설 주인공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지내면 안 돼?"
그녀는 순간 당황했다.
"엄마도 이제 혼자 있는 게 외로워. 친구도 필요하고, 좋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나쁘진 않잖아."
그러나 아들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엄마가 그런 말 할 줄 몰랐어. 엄마가 우리를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제 와서 그런 걸 찾는다고?"
그녀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이제 나도 나를 위해 살아볼까 생각한 거야."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마음속에는 '엄마'라는 존재가 영원히 변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엄마가 어떤 결정을 하든, 네가 이해해 주면 좋겠다."
아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가족의 반대가 있다고 해도, 이제는 자신의 감정을 존중해야 할 때였다.
그녀는 문을 나서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도… 한 번쯤은 내 행복을 찾아볼게."
잊었던 감정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천천히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의 그녀는 여전히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예전과 달랐다.
설렘.
그 감정이 다시 찾아올 줄은 몰랐다.
마지막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던 게 언제였던가?
남편과 함께했던 젊은 날?
아이들을 처음 품에 안았을 때?
그때의 감정과는 분명 달랐다.
요즘 그녀는 문득 문득 우진을 떠올리고 있었다.
공원에서 나눈 대화, 함께 마셨던 따뜻한 차 한 잔.
그의 미소, 그리고 따뜻한 말들.
그냥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졌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점점 소중해졌다.
이게 정말 단순한 우정일까?
아니면…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 걸까?
그녀는 그날도 공원에서 우진을 만났다.
"오늘은 바람이 좀 차네요."
그가 그녀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넸다.
"그래도 따뜻한 커피 한 잔이면 괜찮죠?"
그녀는 웃으며 커피를 받았다.
"감사해요. 요즘 이렇게 챙김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어색하네요."
"챙김이라뇨. 저는 그냥 좋은 사람에게 따뜻한 한 잔을 주고 싶었을 뿐인데요."
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소한 배려, 작은 관심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오래도록 잊고 있던 감정이었다.
"사실, 요즘 조금 혼란스러워요."
그녀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혼자 지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가족이 전부였고, 아이들이 떠난 뒤에는 그냥 조용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요즘은…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나도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해도 되는 걸까?"
우진은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살아온 만큼 남은 시간도 소중한 거예요.
지금껏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면, 이제는 스스로를 위해 살아도 되는 거죠."
그녀는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그날 밤, 그녀는 한참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서도,
마음속에는 계속해서 우진의 말들이 떠올랐다.
"이제는 스스로를 위해 살아도 되는 거죠."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정말로 그녀에게도 새로운 봄날이 올 수 있을까?
그녀의 가슴 한쪽에서, 아주 작지만 확실한 감정이 움트고 있었다.
설렘, 이 감정을 이제 더는 외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세상의 시선
그녀는 조용히 거리를 걸었다.
공원도, 동네 슈퍼도, 단골 카페도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며칠 전만 해도 가벼운 발걸음이었는데, 오늘은 다르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작은 속삭임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그 과부 말이야…."
"요즘 누군가랑 자주 만난다던데?"
"나이 들어서 연애는 무슨 연애야."
그녀는 애써 귀를 닫으려 했다.
하지만 그 말들은 마치 바람처럼 스며들어 그녀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며칠 전, 그녀는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늘 가던 단골 찻집, 반가운 얼굴들.
"요즘 어떻게 지내?"
"그냥 뭐, 똑같지. 별일 없고."
늘 그래왔듯, 아이들의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졌다.
그녀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요즘 좋은 친구가 생겼어."
친구들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좋은 친구?"
"누군데?"
"혹시… 남자?"
그녀는 살짝 당황했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찻집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너, 정말이야?"
"나이 들어서 그런 감정이 다시 생길 수도 있구나."
"아니, 근데… 그게 좀…"
누군가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그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친구야. 가끔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정도야."
그녀는 변명하듯 말했다.
그러자 한 친구가 나직이 말했다.
"남자와 여자가 그냥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공원에 가는 길이 조심스러워졌다.
마치 자신이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우진과의 만남이 꺼려졌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녀는 고민했다.
사회가 정해 놓은 틀 속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걸까?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역할이 끝났다면
그저 조용히 살아야 하는 걸까?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따라주지 않았다.
다음날, 우진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그녀는 멋쩍게 웃었다.
"그냥… 요즘 좀 생각할 게 많았어요."
우진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혹시… 사람들이 뭐라고 했나요?"
그녀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럴 것 같았어요. 사람들은 쉽게 말하죠.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 아닐까요?"
그녀는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손을 주물렀다.
"정말… 내 선택이 중요한 걸까?"
"나는 그냥, 당신이 편안했으면 좋겠어요."
우진의 말은 따뜻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말했다.
"나… 한 번쯤은 내 마음을 따라가 보고 싶어요."
우진은 환하게 웃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녀는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비로소, 세상의 시선보다 자신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선택의 순간
그녀는 다시 거울 앞에 섰다.
오랜만에 꺼내 입은 옅은 파스텔빛 블라우스와 단정한 치마.
예전의 그녀라면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입지 않았을 옷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스스로를 위해 예쁘게 단장하는 느낌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설렜다.
어쩌면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된 선택을 해보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늘 가족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남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고민하는 건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녀는 차분한 발걸음으로 카페에 들어섰다.
창가 자리에는 이미 우진이 앉아 있었다.
그는 여전히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반겼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이제는 기다리는 것도 즐거워요."
그녀는 그 말에 미소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결정을 내려야 할 날이었다.
며칠 전, 아들은 그녀를 따로 불러냈다.
"엄마, 나랑 잠깐 얘기 좀 해."
그녀는 아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엄마, 난 솔직히 이해가 안 돼."
"뭐가 이해가 안 되는데?"
"왜 갑자기 그런 선택을 하려는 건데?
그냥 조용히 지내면 안 돼?"
그녀는 그 말에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참으며 말했다.
"난 조용히 살아온 게 벌써 30년이야.
네 아버지 떠나고, 너희들 키우면서 살아온 시간들,
그동안 난 정말 내 인생을 살아왔던 걸까?"
아들은 당황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거야?"
"아니, 행복했지.
하지만 그 행복은 나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너희를 위한 행복이었어.
이제는 조금… 내 자신을 위한 행복을 찾아보고 싶어."
아들은 한숨을 쉬었다.
"엄마, 난 그냥… 엄마가 지금처럼 편안하게 살았으면 해."
"아들아, 네가 말하는 ‘편안한 삶’이 정말 나를 위한 걸까?
아니면 네가 익숙한 엄마의 모습이 변하지 않길 바라는 걸까?"
아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조용히 아들의 손을 잡았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엄마를 응원해 줄 수 있겠니?"
아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정말 행복할 수 있다면."
그녀는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카페로 돌아와, 그녀는 우진을 바라보았다.
그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정하셨어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진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번 봄에는… 나도 여행을 가볼까 해요."
우진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좋은 선택이네요."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부드러운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황혼에도 봄날은 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 봄날을 맞이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을.
엄마의 새로운 봄날
여행 가방을 천천히 닫으며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방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설레면서도 낯선 기분.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여행지의 지도와 메모가 놓여 있었다.
'부산, 경주, 제주도…'
한때는 그저 종이에 적힌 꿈이었지만, 이제는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우진과의 여행.
그녀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한 번뿐인 인생, 이제는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 했다.
아들이 아침 일찍 집으로 찾아왔다.
그녀가 떠나기 전에 인사하고 싶다며.
"엄마, 짐 다 챙겼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응. 오랜만에 여행이라 그런지 기분이 묘하네."
아들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예전과는 다른, 한결 가벼워진 모습.
그리고 한층 더 밝아진 미소.
"엄마,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좀 당황했어."
"알아."
"근데 생각해 보니까, 엄마도 엄마 인생이 있는 거잖아.
이제야 그걸 좀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아들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
아들은 멋쩍게 웃으며 그녀의 가방을 들어 올렸다.
"엄마, 즐겁게 다녀와. 그리고… 후회 없이 살아."
그녀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가슴이 뭉클했다.
그러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정말 그래야겠지."
기차역, 플랫폼 위.
우진이 미소 지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잘 오셨네요."
"기다리게 했나요?"
"아뇨, 적당한 타이밍이었어요."
그녀는 가방을 고쳐 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떠나는 거네요."
우진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망설이진 않으셨어요?"
"망설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아요."
기차가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플랫폼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시작.
황혼에도 봄은 올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봄을 향해 떠나는 날이었다.
기차 문이 열리자 그녀는 조용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그녀의 새로운 봄날이 시작되었다.
엔딩멘트 (450자 내외)
"엄마는, 이제 엄마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살아보려고 해."
그녀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한때는 믿을 수 없었던 감정, 어쩌면 사치라 여겼던 사랑이 그녀에게도 다시 찾아왔다. 오랜 세월 동안 가족을 위해 살아왔지만,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도 살아갈 시간이었다. 세상의 시선이 두려웠던 순간도 있었고, 자식들의 반대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결국 그녀는 용기 내어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
황혼의 문턱에서 피어난 이 사랑이, 봄날처럼 따스한 햇살이 될 수 있을까? 설령 시간이 많이 지나가더라도, 그녀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 인생의 진짜 봄날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