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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쟁이가 본 조선 최고의 악녀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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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48자)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그 눈에는 뱀의 독이 흘렀고, 앵두 같은 입술 뒤에는 가문을 무너뜨릴 칼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한양 최고의 관상쟁이조차 경악하게 만든 조선 최고의 악녀! 과연 그녀는 어떤 얼굴로 세상을 유혹하고 파멸시켰을까요?
디스크립션 (299자)
『기재잡기』에 기록된 한 여인에 대한 기이한 일화를 바탕으로 구성한 이야기. 당대 최고의 관상쟁이 '백선생'의 눈에 비친 희대의 악녀 '매화'. 그녀는 자신의 미모와 육체를 무기 삼아 남자들을 홀리고, 그들의 가문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권력의 중심으로 향합니다. 한 늙은 관상쟁이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한 악녀의 위험하고도 관능적인 욕망의 연대기!
※ 매화의 탈을 쓴 뱀의 얼굴
나의 이름은 백 아무개. 한양 운종가에서 평생을 사람의 얼굴만 읽으며 살아온 늙은 관상쟁이일세. 나의 눈을 거쳐 간 얼굴만 수만, 그 얼굴들 속에 담긴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을 지켜보며, 나는 운명이란 결국 얼굴에 모두 새겨져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지. 하지만 그날, 나의 오십 년 업력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결코 보아서는 안 될 얼굴을 보고야 말았네. 그날은 유난히 화창한 봄날이었지. 나의 허름한 초옥으로, 한양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의 자제인 윤 공자가 한 여인의 손을 잡고 찾아왔네. 그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표정으로, 자신의 정혼자라며 그 여인을 소개했지. 그녀의 이름은 매화라고 했네. 이름처럼, 그녀는 이제 막 피어난 매화처럼 청초하고 아름다웠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인 모습은 정숙한 규수의 표본이었고, 맑고 선한 눈망울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었네. 윤 공자는 내게 그녀의 관상을 보아달라 청했지. "선생님, 제 여인의 상이 얼마나 복된 상인지,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이 여인과 함께라면, 우리 가문은 대대손손 번창할 것입니다." 그는 이미 사랑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게야. 나는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았네. 그런데,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나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네. 분명 그녀의 이목구비는 귀하고 복된 상이 맞았어. 도톰한 귓불은 재복을 의미했고, 봉긋한 이마는 높은 지위를, 단아한 입매는 현숙함을 말하고 있었지. 하지만…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단 하나의 흉상(凶相)이, 그녀의 얼굴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었네. 바로 눈이었어. 겉으로는 사슴처럼 선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의 깊은 곳에는, 먹이를 노리는 뱀의 눈, 사안(蛇眼)의 교활함과 잔혹함이 번뜩이고 있었네. 또한 웃을 때 미세하게 떨리는 입꼬리는,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음험한 기운을 품고 있었고, 갸름한 턱선에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피눈물도 흘리지 않을 냉혹함, 이리(狼)의 상이 깃들어 있었지. 저것은… 사람의 얼굴을 한 재앙이다. 저 여인이 들어가는 집안은, 필시 풍비박산이 나고, 그녀를 사랑하는 사내는 그 독에 중독되어 비참하게 죽어갈 것이다. 나는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감추고, 애써 표정을 관리해야만 했네. 나는 윤 공자를 따로 불러, 조심스럽게 경고했네. “공자님, 저 여인은….” “말씀하시지요, 선생님. 천하제일의 복상 아닙니까?” “아닙니다. 저 여인은… 공자님의 가문을 멸할 독사의 상이옵니다. 겉은 꿀과 같으나, 속은 비상(砒霜)과 같으니, 당장 연을 끊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자님께서는 모든 것을 잃고 길바닥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그 충언에, 윤 공자는 불쾌한 듯 얼굴을 굳혔네. “선생님께서 노망이 드셨나 봅니다. 어찌 이리도 어질고 착한 여인에게 그런 험한 말을 하십니까. 다시는 선생님을 찾지 않겠습니다.” 그는 내 말을 한낱 늙은이의 시기 어린 저주로 치부하고는, 매화의 손을 잡고 매정하게 돌아섰네. 문을 나서던 매화가, 나를 향해 뒤를 돌아보았지. 그리고는, 아주 찰나의 순간,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네. 하지만 그 눈만은 웃고 있지 않았지. 그녀의 눈은, 마치 ‘네놈이 감히 나의 정체를 꿰뚫어 봐?’ 라고 말하는 듯, 차갑고 섬뜩한 경고의 빛을 띠고 있었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네. 나는 보았네. 한 가문이 무너져 내리는 시작을. 그리고 한 악녀가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그 저주받은 서막을 말일세.
※ 유혹의 거미줄
나의 불길한 예언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현실이 되어갔네. 윤 공자는 나의 충고를 무시하고, 그해 가을 매화와 성대한 혼례를 올렸지. 그리고 그날 밤부터, 매화는 자신이 친 거미줄의 한가운데에서, 먹잇감이 스스로 심장을 바치게 만드는, 능숙한 사냥을 시작했네. 그녀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남자들이 꿈꾸는 모든 것을 연기하는 천재적인 재능이었지. 그녀는 낮에는 누구보다 현숙하고 지혜로운 아내였네. 시부모를 공경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빈틈없이 처리했지. 윤 공자가 시를 읊으면,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감동한 표정으로 그의 시를 찬미했고, 그가 정치에 대한 포부를 이야기하면, 그녀는 존경과 흠모의 눈빛으로 그의 말을 경청했네. 윤 공자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아내를 얻었다고 굳게 믿었지. 하지만 진짜 사냥은 밤에 시작되었네. 매화는 침상 위에서, 순진한 규수와 요염한 기생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요부(妖婦)였지. 그녀는 윤 공자를 안달하게 만드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네. 첫날밤, 그녀는 부끄러움에 몸을 떨며, 그의 서툰 손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숫처녀를 연기했지. 그 모습은 윤 공자의 보호 본능과 정복욕을 동시에 자극했네. 그는 자신이 이토록 순결하고 아름다운 존재를 온전히 소유하게 되었다는 황홀경에 빠져들었지.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녀는 밤마다 다른 여인이 되었네. 어떤 날 밤에는, 그의 작은 손길 하나에도 불에 덴 듯 뜨거운 신음을 내뱉으며,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순종적인 여인이었지.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서방님… 서방님께서는 소녀의 하늘이옵니다. 부디, 이 미천한 몸을 마음껏 취하시옵소서.”라며 애원했네. 그녀의 거짓된 신음은, 그의 귓가에 달콤한 독처럼 스며들어, 이성을 마비시켰지. 또 어떤 날 밤에는, 그를 침상에 눕히고, 먼저 그의 옷고름을 푸는 대담한 여인이었네. 그녀는 그의 몸 구석구석을, 마치 잘 익은 과일의 맛을 보듯, 혀끝으로 부드럽게 핥고 애무하며, 그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쾌락의 세계로 이끌었지. 그녀의 뜨거운 입술이 그의 가슴과 복부를 지나, 사내의 가장 깊고 민감한 곳에 닿았을 때, 윤 공자는 쾌락의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네. 그녀의 모든 애무와 교성은, 그러나 사랑의 표현이 아니었네. 그것은 거미가 먹잇감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기 위해, 온몸에 끈적한 거미줄을 감는 행위와도 같았지. 그녀의 한숨은 쾌락의 한숨이 아니라, 계산된 전략이었고, 그녀의 뜨거운 눈물은, 사랑의 눈물이 아닌, 남자의 영혼을 옭아매는 독이었네. 윤 공자는 완벽하게 그녀의 노예가 되었지. 그는 매일 밤, 그녀가 주는 관능의 독배를 기꺼이 마셨고, 그녀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네. 그는 부모 형제의 충고도, 친구들의 우려도 모두 무시하고, 오직 매화의 말만을 믿고 따랐지. 마침내, 그는 집안의 모든 재산과 가문의 비밀이 담긴 인감까지도, 사랑의 증표라며 그녀의 손에 쥐여주고 말았네. 거미줄에 단단히 묶인 먹잇감은, 자신이 곧 잡아먹힐 운명이라는 것을 까맣게 모른 채, 그저 거미의 아름다움에 취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게야.
※ 가문을 무너뜨린 독(毒)
윤 공자 집안의 모든 것을 손에 쥔 매화는, 더 이상 달콤한 아내를 연기할 필요가 없었네. 그녀는 차갑고 냉정한 사냥꾼으로 돌아와, 자신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마지막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지. 그녀의 계획은, 가문을 안에서부터 완벽하게 썩어 문드러지게 만드는 것이었네. 먼저, 그녀는 윤 공자를 통해 얻어낸 인감을 이용하여, 가문의 전답과 재산을 헐값에 팔아치우기 시작했네. 그리고 그 돈은 대포 상단을 통해 자신의 명의로 차곡차곡 빼돌렸지. 그녀는 또한, 윤 공자의 아버지가 과거에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저질렀던 비리들을 몰래 기록한 비밀 장부를 찾아냈네. 그리고 그것을 익명의 투서로 만들어, 사헌부에 몰래 투입했지. 동시에, 그녀는 집안의 종들을 이간질하고, 형제들 사이에 불신의 씨앗을 심었네. 장남인 윤 공자에게는, 그의 동생이 형을 몰아내고 가문의 주인이 되려 한다고 속삭였고, 동생에게는, 형이 모든 재산을 독차지하려 한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렸지. 한때는 화목했던 윤 공자의 집안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독처럼 퍼져나간 매화의 계략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네. 재산은 바닥을 드러냈고, 아버지는 사헌부의 조사를 받게 되었으며, 형제들은 서로를 원수처럼 증오하게 되었지. 불과 반년 만에, 한양에서 손꼽히던 명문가는, 껍데기만 남은 빈털터리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네. 마침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그날 밤, 모든 것을 잃고 폐인이 된 윤 공자가 매화를 찾아왔네. 그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애원했지. “매화야… 대체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네. 하지만 괜찮네. 우리에겐 아직 서로가 있지 않은가. 우리 둘이서 다시 시작하면 되네.” 그의 그 어리석고 순진한 말을 듣고, 매화는 처음으로 그의 앞에서 소리 내어 웃었네. 그것은 경멸과 조소가 가득 담긴, 차갑고 잔인한 웃음이었지.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네. “다시 시작하자고? 누구 마음대로? 당신은, 이제 나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어.” 윤 공자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네. “그게… 그게 무슨 소리인가.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는가.” “사랑? 내가? 당신 같은 멍청이를?”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턱을 발끝으로 들어 올리며, 벌레를 보듯 경멸적인 눈으로 내려다보았네. “당신은 그저, 내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첫 번째 디딤돌이었을 뿐이야. 당신의 어리석은 사랑 덕분에, 나는 이제 당신 같은 사내들이 평생을 바쳐도 얻지 못할 부와 명성을 얻었지.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녀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은, 비수가 되어 그의 심장을 난도질했네. 그가 사랑했던 천사는, 사실 그의 심장을 파먹기 위해 온 악마였던 게야. 절망감에 미쳐버린 윤 공자는 그녀에게 달려들었지만, 이미 매화가 매수해 둔 건장한 하인들에게 붙들려, 개처럼 질질 끌려나가 내쫓기고 말았지. 그 후, 윤 공자는 길거리에서 술로 세월을 보내다, 어느 추운 겨울날 밤, 다리 밑에서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하더군.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술 한 병을 사서 그의 무덤을 찾아갔네. 그리고는 그의 무덤에 술을 부어주며, 혼잣말을 했지. ‘어리석은 젊은이. 내가 그리도 경고하지 않았는가. 뱀의 눈을 가진 여인을 사랑한 죄는,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는 법일세.’ 나는 알고 있었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한양에는, 곧 피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야.
※ 더 높은 곳을 향한 욕망
윤 공자의 가문을 집어삼킨 매화는, 이제 한양 사교계에 ‘비련의 여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네. 남편의 방탕함과 시아버지의 비리 때문에 온갖 고초를 겪었으나, 끝까지 가문을 지키려 애썼던 현숙하고 기품 있는 미망인. 그것이 바로 매화가 스스로 만들어낸, 그녀의 새로운 얼굴이었지. 그녀는 윤가에게서 빼앗은 막대한 재산을 이용해, 가난한 선비들을 돕고, 절에 시주하며 자신의 명성을 쌓아나갔네.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미모와 선행을 칭송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지. 그 모든 것이, 더 큰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한, 교활한 위장술이라는 것을. 그녀의 다음 사냥감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물이었네. 바로, 선왕의 아우이자 임금의 숙부 되는, 덕성대원군이었지. 그는 막강한 왕실의 종친이었으나, 몇 해 전 부인을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져, 모든 정치 활동을 멀리한 채 칩거하고 있었네. 매화는 바로 그의 ‘외로움’을 파고들었지. 그녀는 덕성대원군이 자주 찾는 절을 알아내고, 그곳에서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만들어냈네. 그녀는 화려한 비단옷 대신, 수수한 소복 차림으로 불상 앞에서 죽은 남편의 명복을 비는, 애처로운 미망인의 모습을 연기했지. 덕성대원군은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학식이 깊고, 시와 문에 능하며, 자신의 슬픔을 이해해주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했네. 그녀는 결코 서둘러 그를 유혹하지 않았어. 젊은 윤 공자를 상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지. 그녀는 덕성대원군에게 성적인 매력이 아닌, ‘정신적인 안식처’를 제공했네. 그가 죽은 부인을 그리워하며 술을 마시면, 그녀는 밤새 그의 곁을 지키며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었고, 그가 정치에 대한 환멸을 토로하면, 그녀는 깊은 이해와 공감으로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지. 어느 비 내리는 밤이었네. 덕성대원군은 만취하여 매화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고, 매화는 그런 그를 자신의 처소로 데려왔지.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비로소 본색을 드러냈네. 그녀는 잠든 그의 옷을 벗기고, 그의 곁에 누워, 마치 죽은 그의 부인이 환생이라도 한 듯, 그의 지친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지. 잠결에 부인의 온기라 착각한 덕성대원군이 그녀를 끌어안자, 매화는 그의 귓가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으며 속삭였네. “대원군 마님… 소녀가… 마님의 외로움을 멎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날 밤의 동침은, 격정적인 정사가 아니었네. 그것은 늙고 외로운 사내의 영혼을, 부드러운 거미줄로 옭아매는, 치밀하게 계산된 심리적 지배 행위였지. 덕성대원군은 그렇게, 또 한 명의 희생자가 되어, 매화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기 시작했네. 그는 매화를 자신의 정식 부인으로 맞이하겠다 공표했고, 그녀를 위해 다시 조정에 나가, 그녀의 앞길을 막는 자들을 가차 없이 제거하기 시작했지. 뱀은, 용의 날개를 빌려, 하늘로 올라갈 준비를 마친 것이었네.
※ 왕의 여자가 되다
덕성대원군의 절대적인 후원을 등에 업은 매화는, 마침내 한양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하게 되었네. 그녀의 명성은 궁궐에까지 알려졌고, 마침내 그녀의 운명을 바꿀 기회가 찾아왔지. 당시 임금은, 기존의 후궁들이 벌이는 시기와 암투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네. 그때, 덕성대원군이 임금에게 매화를 추천한 것이야. “전하, 신의 집에 학식과 덕망이 비할 데 없이 뛰어난 여인이 있사온데, 전하의 말벗이 되어드린다면, 성군이신 전하의 고뇌를 덜어드릴 수 있을 것이옵니다.” 임금은 처음에는 숙부의 여인을 들이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지만, 매화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 터라, 호기심에 그녀를 입궁시키라 명했지. 매화가 후궁의 품계인 ‘숙의(淑儀)’에 책봉되어 궁궐에 들어오던 날, 나는 우연히 그 행차를 길에서 보게 되었네. 화려한 가마에 앉아 세상을 다 가진 듯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지. ‘마침내, 뱀이 용의 궁궐로 들어가는구나. 이제 이 나라에 피바람이 불겠구나.’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네. 궁궐은, 매화라는 아름다운 독사가 날뛰기에 너무나도 완벽한 무대였지. 그녀의 가장 큰 경쟁자는, 당시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조귀인’이었네. 조귀인은 아름답고 교태가 넘쳤지만, 성정이 급하고 질투가 많았지. 매화는 그런 조귀인의 성격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네. 그녀는 조귀인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대신, 그녀의 발밑에 교묘한 함정을 팠지. 매화는 조귀인이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만들기 위해, 몰래 궁궐 밖의 무당을 불러들여 저주 의식을 행한다는 비밀을 알아냈네. 하지만 그녀는 이것을 바로 임금에게 고하지 않았어. 대신, 그녀는 임금 앞에서 조귀인을 칭찬하며, 그녀의 필체를 흉내 내어 ‘어진 성품’을 칭송하는 시를 지어 바쳤지. 그리고는 그 시의 뒷면에, 아주 교묘하게 저주 의식에 쓰이는 부적의 문양을 희미하게 그려 넣었네. 어느 날 밤, 임금이 매화의 처소에 들렀다가, 우연을 가장하여 놓여있던 그 시를 보게 되었지. 시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던 임금은, 뒷면에 그려진 기이한 문양을 발견하고는 의아해했네.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매화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대답했지. “신첩은… 그저 조귀인 마마의 필체를 따라 써본 것이온데… 어찌 이런 불길한 것이….” 임금은 즉시 조귀인의 처소를 수색하라 명했고, 그곳에서 수많은 저주의 증거물들이 쏟아져 나왔네. 조귀인은 그 자리에서 폐서인되어 사약을 받았고, 매화는 단 한 방울의 피도 묻히지 않고 가장 강력한 정적을 제거했지. 그날 밤, 임금은 매화를 자신의 침소로 불렀네. 그는 교활한 여인들의 암투에 지쳐있었고, 지혜롭고 깨끗해 보이는 매화에게서 위안을 얻고 싶었지. 매화는 그날 밤, 임금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았네. 그녀는 임금의 지친 어깨를 안마하며, 나라의 고단함을 위로했고,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의 유일한 이해자인 척했지.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 그녀는 이제껏 왕이 겪어보지 못했던, 가장 농염하고도 자극적인 쾌락을 선사했네. 그녀의 손길과 입술은, 왕의 육체가 아닌, 그의 외로운 영혼을 잠식해 들어갔지. 그날 이후, 임금은 완전히 매화의 포로가 되었네. 국정의 대소사를 모두 그녀와 상의했고, 그녀의 말 한마디에 정승의 목이 날아갔지. 뱀은, 마침내 용의 목을 휘감고, 나라를 통째로 삼키기 시작한 것이었네.
※ 관상쟁이의 마지막 예언
그로부터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네. 나는 이제 허리가 굽고, 귀가 어두워진 늙은이가 되었지. 그사이, 나라는 완전히 매화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네. 임금은 허수아비가 된 지 오래였고,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고, 수렴청정이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의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었지. 그녀의 폭정 아래, 나라는 썩어가고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누추한 초옥으로, 궁궐의 내시가 찾아왔네. 매화, 아니, 이제는 대비가 된 그녀가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지. 나는 모든 것을 예감하며, 조용히 입궐 준비를 했네. 수십 년 만에 다시 마주한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은 생기가 아닌, 독기로 가득 차 있었네. 그녀는 화려한 대전에서, 나를 발아래 세워두고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지. “늙은 관상쟁이야, 네가 아직도 살아있었구나. 수십 년 전, 네가 내게 무어라 예언했었는지 기억하느냐? 나의 얼굴이 가문을 멸할 상이라 했었지. 보아라. 나는 가문을 넘어, 이제 이 나라의 주인이 되었다. 너의 관상학이 틀렸음을, 네 입으로 직접 증명해 보이거라.” 그녀는 자신의 승리를, 나를 통해 확인받고 싶었던 게야.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네. 그녀의 얼굴은 최고의 권세와 부귀를 상징하는 기운으로 가득했지. 하지만, 나의 눈은 속일 수 없었네. 그 화려한 기운 아래, 아주 짙고 검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네. 그녀의 눈꼬리에는 배신당할 자의 비통함이 서려 있었고, 굳게 다문 입술에는 피를 토하고 죽을 자의 고통이, 그리고 이마 한가운데에는 칼날에 목이 잘릴 자의 흉터가, 마치 낙인처럼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네. “마마,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 눈에 보이는 것은 똑같사옵니다.” “뭣이라?” “마마의 얼굴에는 천하가 담겨 있사오나, 그 천하는 모래 위에 지은 성이옵니다. 마마께서 쌓아 올리신 모든 것들이, 마마의 피눈물과 함께 무너져 내릴 날이… 머지않았사옵니다. 마마의 끝은, 그 누구보다도 외롭고, 비참한 죽음뿐이옵니다.” 나의 예언에, 그녀의 얼굴이 분노로 흉측하게 일그러졌네. 그녀는 당장 내 목을 치라 소리쳤지만,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네. 나는 그저, 한평생 운명을 읽어온 늙은이로서,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끝을 보았을 뿐이니까. 나는 옥졸들에게 끌려나가며, 마지막으로 그녀를 향해 말했네. “사람은 얼굴을 바꿀 수 없으나, 마음을 닦으면 관상이 변하는 법. 허나, 마마께서는 단 한 번도 마음을 닦지 않으셨으니, 정해진 운명을 피할 길이 없으실 것입니다.” 나의 그 말이, 그녀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 되었지. 그리고 몇 해 뒤, 그녀가 낳은 세자가 역모를 꾀했다는 누명을 쓰고 폐위되던 날, 모든 권력을 잃은 매화는, 성난 군중들이 던지는 돌에 맞으며, 자신이 죽였던 조귀인과 똑같이, 차가운 사약을 마시고 홀로 쓸쓸히 죽어갔다고 하더군. 결국, 그녀의 얼굴에 새겨져 있던 운명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녀의 삶을 지배했던 게야. 그것이, 내가 평생을 바쳐 깨달은, 관상의 무서움일세.
유튜브 엔딩멘트
朝鮮 夜事 시청자 여러분, 오늘 들려드린 희대의 악녀 매화의 이야기, 어떻게 보셨습니까? 관상에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우면서도 섬뜩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그녀의 악행이 관상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녀의 탐욕스러운 마음이 얼굴에 드러난 것이었을까요? 판단은 시청자 여러분의 몫으로 남기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혼례날 밤 신랑이 도망쳐 버린 기막힌 사연을 들려드립니다. 그런데, 모두가 신부를 동정할 때, 그녀는 혼자서 웃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신랑이 도망간 혼례날 밤, 아씨는 웃고 있었다】 편도 많이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