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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과 원경왕후】 권력을 위해 결혼했지만... 진짜 사랑이 된 정략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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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나와 함께 천하를 도모합시다.” 야망을 위해 손잡은 두 남녀. 왕좌를 향한 피의 길을 함께 걸었지만, 권력의 정점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눠야 했습니다. 정략(政略)으로 시작해 애증(愛憎)으로 끝난, 가장 뜨거웠던 역사 로맨스!
디스크립션
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왕권을 꿈꾼 남자, 이방원. 그리고 그를 왕으로 만든 담대한 여인, 원경왕후 민씨. 이들은 권력을 위한 정략결혼으로 만났지만, 수많은 죽을 고비를 함께 넘으며 서로의 유일한 동반자가 됩니다. 하지만 왕좌에 오른 후, 사랑은 질투가 되고 신뢰는 의심이 되어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데... 권력과 사랑 사이, 애증으로 뒤얽힌 태종과 원경왕후의 진짜 이야기.
※ 야망의 시작, 위험한 동맹
때는 고려의 국운이 쇠하고, 여기저기서 새로운 용들이 꿈틀대던 14세기 말. 고려의 수도 개경,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인 여흥 민씨 가문의 저택이 오랜만에 활기를 띠었습니다. 가문의 귀한 딸이 변방의 신흥 무장 세력인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에게 시집을 가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열일곱의 신부 민씨와 열다섯의 신랑 이방원. 누가 보아도 이 혼례는 사랑이 아닌, 철저한 계산과 야망이 빚어낸 정략의 산물이었습니다. 동북면의 촌뜨기 무장이라는 멸시를 딛고 중앙 정계의 핵심으로 진입하려는 이성계 가문과, 칼을 쥔 자와 손을 잡음으로써 격변하는 세상의 파도에 올라타려는 노회한 정객 민제의 수가 정확히 일치한 결과였죠. 연지가 곱게 발린 앳된 얼굴의 신부는 그러나, 가마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이 혼인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누군가의 아내가 되기 위해 태어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민제로부터 물려받은 정치적 감각과 담대함은, 이미 그녀로 하여금 미래의 남편이 될 사내를 냉철하게 분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방원… 아버지 이성계보다 그 아들들의 기개가 더욱 위협적이라 들었다. 그중에서도 다섯째. 과거에 급제할 만큼 머리가 비상하고, 성정은 불같다고…' 반면, 신랑 이방원은 흘러넘치는 기운을 애써 억누른 채 예법에 따르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여흥 민씨… 개경의 늙은 여우들이 득실거리는 굴이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여인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혼례 첫날밤, 마침내 둘만 남게 된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과 함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붉은 비단 이불과 타오르는 촛불이 방 안을 후끈하게 달구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오히려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어색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신부 민씨였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그러나 목소리에는 한 치의 떨림도 없이 말했습니다. "서방님께서는 고려의 녹을 먹는 신하의 아들이시나, 그 눈빛은 고려의 신하가 아닌 새로운 하늘을 열고자 하는 자의 눈빛입니다. 제가 틀렸습니까?"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닌, 정곡을 찌르는 도발이었습니다. 그 당돌함에 이방원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는 자신을 체념한 아내나 어려워하는 계집이 아닌, 동등한 상대로 마주하는 이 여인이 단번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민씨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의 턱을 가만히 들어 올려 눈을 맞추었습니다. "부인의 눈이 정확하오. 나는 썩어 문드러진 이 고려의 지붕 아래서, 아버지의 그늘에 기대어 안락하게 살 생각이 추호도 없소." 이방원의 시선이 민씨의 붉은 입술을 지나, 단단하게 여며진 옷고름으로 향했습니다. "부인은 어떻소? 개경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그저 한 사내의 아내가 되어 조용히 생을 마감할 생각이오?" 민씨는 피하지 않고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습니다. "저 또한 사내로 태어났다면 천하를 도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의 몸으로 태어난 이상, 천하를 품을 사내를 지아비로 맞이하여 그 꿈을 함께 이루고자 합니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감돌던 얼음장 같은 공기가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서로의 눈동자 속에서 발견한 것은 똑같은 종류의 뜨거운 야망과, 세상을 향한 거침없는 욕망이었습니다. 이방원의 손이 거침없이 민씨의 옷고름을 풀어헤쳤습니다.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드러난 희고 부드러운 살결이 촛불 아래서 관능적인 빛을 발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첫날밤의 의식이 아니었습니다. 두 개의 거대한 야망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었고, 서로의 몸에 서로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위험한 계약이었습니다. 이방원은 맹수처럼 그녀의 몸을 파고들었고, 민씨는 그 거친 움직임을 모두 받아내며 그의 등줄기를 강하게 끌어안았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 대신 '야망'과 '권력'을 속삭이며 밤이 새도록 서로를 탐했습니다. 정략으로 시작된 하룻밤은 그렇게, 조선 역사상 가장 뜨겁고 위험한 정치적 동반자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 되었습니다.
※ 피로 물든 길, 함께 넘은 칼날
조선이 건국되고 아버지가 용상에 앉았지만, 이방원의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는 듯 보였습니다. 아버지 태조 이성계는 공이 가장 컸던 아들 이방원이 아닌, 계비 강씨의 소생인 어린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했고, 신권(臣權) 중심의 나라를 꿈꾸던 정도전은 왕자들의 사병을 모두 혁파하여 그들의 손발을 묶으려 했습니다. 특히 정도전에게 이방원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의 안에는 왕이 될 야심이 이글거리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방원은 매일 밤 분노와 모멸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칼을 휘두르며 울분을 토해내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 남편을 지켜보는 민씨의 마음은 타들어 갔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섣불리 위로하거나 그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조용히 때를 기다렸습니다. 이 분노가, 이 모멸감이 남편을 왕으로 만들 가장 강력한 연료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남편이 칼을 휘두를 때, 그의 등 뒤에서 땀으로 젖은 옷을 갈아입혀 주었고, 그가 술에 취해 쓰러지면 묵묵히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지친 맹수와도 같은 남편을 자신의 몸으로 위로했습니다. "아직 때가 아닐 뿐입니다. 서방님의 칼은 녹슬지 않았고, 서방님의 야망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그녀는 이방원의 귀에 속삭이며 그의 상처 입은 자존심을 어루만졌습니다. 그녀의 위로는 단순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부드러운 살결과 뜨거운 숨결로 전하는, 당신은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의 주문이었습니다. 그녀와의 밤을 통해 이방원은 잠시나마 분노를 잊고 힘을 얻었습니다. 마침내 1398년, 칼날 위를 걷던 긴장감은 폭발하고야 말았습니다. 정도전 일파가 왕자들을 한날한시에 모두 죽이려 한다는 끔찍한 첩보가 들어온 것입니다. 사저에 모인 이방원의 가신들은 창백하게 질려 우왕좌왕했지만, 정작 민씨는 그 어느 때보다 침착했습니다. 그녀는 이방원의 손을 잡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서방님, 지금입니다. 더 이상 망설이면 우리 모두가 죽습니다. 저들이 칼을 빼기 전에, 먼저 치셔야 합니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고, 그 안에는 이 싸움의 승리에 대한 확신이 가득했습니다. 그녀의 결단에 이방원은 마침내 칼을 빼 들었습니다. 그리고 민씨는 모두를 놀라게 할 비장의 무기를 꺼내놓았습니다. 바로 남편 몰래 집안 곳곳에 숨겨두었던 수십 자루의 칼과 창, 그리고 갑옷들이었습니다. 그녀는 훗날을 도모하며 정도전의 눈을 피해 조금씩 무기를 빼돌려왔던 것입니다. 그녀는 직접 이방원의 몸에 차갑고 묵직한 갑옷을 입혀주었습니다. 그녀의 섬세한 손길이 갑옷의 마디마디를 채울 때마다, 이방원은 온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갑옷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 자신의 야망을 지지해주는 단 한 사람의 심장이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1차 왕자의 난이 시작되었고, 이방원은 귀신처럼 날뛰며 정도전과 세자 이방석을 비롯한 정적들을 모조리 베어버렸습니다. 동이 틀 무렵,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집으로 돌아온 이방원. 그는 대문 앞에서 초조하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아내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비릿한 피 냄새와 그녀의 체향이 뒤섞여 그의 머릿속을 아찔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대로 아내를 들어 올려 침소로 향했습니다. 그리고는 맹수처럼 그녀를 탐했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 자의 격렬한 생존 본능이었고, 승리의 희열을 유일한 동반자와 나누는 의식이었습니다. 민씨는 피 묻은 남편의 갑옷이 자신의 살을 파고드는 고통 속에서도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그의 모든 것을 받아냈습니다. 이 피 냄새야말로, 이 고통이야말로 자신과 남편이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 두 사람의 몸부림은 단순한 동지를 넘어, 피와 죽음으로 맹세한 부부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격렬하고도 신성한 의식이었습니다.
※ 왕좌를 향한 마지막 관문
1차 왕자의 난으로 가장 강력한 정적이었던 정도전을 제거했지만, 이방원의 앞길에는 여전히 먹구름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왕위에 오른 둘째 형 정종은 그저 허울뿐인 왕이었고, 실권은 세弟인 이방원이 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문제였습니다. 이방원의 힘이 강해질수록, 그를 경계하는 세력 또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넷째 형이었던 회안대군 이방간의 질투와 야심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는 아버지 이성계의 총애를 받았던 장수였고, 자신 역시 왕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었습니다. 결국 1400년, 이방간은 지휘관 박포의 꾀임에 넘어가 군사를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왕자의 난이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형제들끼리 다시 칼을 겨누는 끔찍한 비극, 2차 왕자의 난이 터진 것입니다. 이방원은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또다시 형제의 피를 손에 묻혀야 한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는 며칠 밤낮을 술로 지새우며 결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런 남편의 고뇌를 지켜보던 민씨는 이번에도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차갑게 식은 술상을 들고 이방원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전하, 여기서 멈추시면 지난번 우리가 흘린 피는 모두 헛된 것이 됩니다. 전하께서 죽인 정도전과 이복동생들의 원혼이 전하의 등 뒤에서 비웃을 것입니다. 형제의 정 때문에 망설이십니까? 저들이 먼저 칼을 들었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다 놓아주면, 반드시 그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녀의 말은 얼음송곳처럼 차갑고 날카로웠습니다. 그녀는 이방원의 손에서 술잔을 빼앗아 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전하께서는 더 이상 한 여인의 지아비, 한 가문의 아들이 아니십니다. 이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셔야 할 분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눈물이 아니라 칼입니다!" 민씨의 서늘한 카리스마 앞에 이방원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내의 말이 맞았습니다.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고, 돌아갈 다리는 제 손으로 불태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민씨를 강하게 끌어안았습니다. "부인의 말이 맞소. 내가 잠시 미망에 빠졌었소." 그는 다시 한번 아내가 건네주는 갑옷을 입고 전장으로 향했습니다. 민씨는 이번에도 대문 앞까지 그를 배웅하며, 그의 등 뒤에 굳건히 서 있었습니다. 전투는 이방원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방간은 유배되었고, 박포는 처형당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앞길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형인 정종으로부터 왕세자의 자리를 물려받은 그날 밤. 이방원은 자신의 처소가 아닌, 세자빈 민씨의 처소로 향했습니다. 그는 모든 시중을 물리게 한 뒤, 직접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방 안에는 오직 두 사람과, 흔들리는 촛불뿐이었습니다. 그는 천천히 민씨에게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감쌌습니다. "길고 긴 싸움이었소. 이제야 모든 것이 끝났소, 빈." 그의 목소리는 안도감과 피로감으로 살짝 떨리고 있었습니다. 민씨는 말없이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수년간 억눌러왔던 눈물이 뜨겁게 터져 나왔습니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자, 이방원은 그녀를 더욱 깊이 끌어안았습니다. 그는 아내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전의 격정적인 밤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날의 입맞춤은 부드러웠고, 다정했으며, 수많은 고난을 함께 이겨낸 전우에 대한 깊은 감사와 연민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옷을 벗겨내고, 자신의 옷도 벗었습니다. 두 사람의 몸에는 지난 세월의 상처와 고뇌가 희미한 흔적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입술로 어루만지며 위로했습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왕세자와 세자빈이 아닌, 그저 이방원과 민씨로 돌아가 서로의 체온을 나누었습니다. 권력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르기 직전, 폭풍전야의 고요함 속에서 두 사람은 마침내 찾아온 평화를 만끽했습니다. 곧 다가올 새로운 세상,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갈 그 세상의 주인이 될 것임을 예감하며, 서로의 몸과 마음에 영원한 안식을 새겼습니다.
※ 권력의 맛, 사랑의 균열
마침내 이방원이 용상에 올라 태종이 되고, 그의 곁을 지켰던 민씨는 국모, 원경왕후가 되었습니다. 피로 얼룩진 길을 함께 걸어온 두 사람에게 마침내 광명의 시대가 열린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은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함께 오르기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그림자를 만들어냈습니다. 왕이 된 태종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변한 것이 아니라 본래 가지고 있던 군주의 냉혹함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절대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가장 먼저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공신들의 힘을 빼앗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칼날은, 그의 아내이자 가장 강력한 정치적 동반자였던 원경왕후에게도 향했습니다. 태종은 끊임없이 새로운 후궁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효빈 김씨, 신빈 신씨, 선빈 안씨… 아름답고 젊은 여인들이 밤마다 왕의 침소를 드나들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왕실의 번성이었지만, 그 속내는 달랐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왕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아내, 원경왕후와 그녀의 막강한 친정, 여흥 민씨 가문을 견제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술수였습니다. 원경왕후에게 남편의 변심은 단순한 질투의 문제를 넘어선,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부정이었습니다. 그녀는 그저 한 남자의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이방원이라는 야심가와 함께 천하를 도모한 동지였고, 그의 칼이 되어주었으며, 그의 방패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을 다른 여인들과 똑같은 '왕의 여자' 중 하나로 취급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 또 다른 후궁의 처소에서 돌아온 태종은 중궁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원경왕후와 마주했습니다. 그녀의 눈은 분노와 슬픔으로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전하, 옥체가 닳으시겠습니다. 매일 밤 새로운 여인의 품을 찾아다니시니 말입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돋쳐 있었습니다. 태종은 피곤한 얼굴로 용상에 앉으며 대꾸했습니다. "왕실의 후사를 잇는 것은 중전의 질투심보다 중요한 국사요." "후사입니까? 아니면 저와 제 가문을 향한 경고입니까?" 원경왕후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습니다. "제 동생들이 전하를 위해 흘린 피와 땀을 벌써 잊으셨습니까! 저 민씨가 아니었다면, 전하께서는 아직도 울분을 삼키며 칼을 갈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녀의 절규에 태종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왕후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의 뺨을 거칠게 움켜쥐었습니다. "잊지 않았소. 하지만 그것이 중전과 그대 가문이 국정을 농단할 권리는 되지 않소. 이 나라의 왕은 나, 이방원이오. 그 누구도, 심지어 중전이라 할지라도 내 권위에 도전할 수는 없소." 그의 눈빛은 과거, 함께 미래를 약속하던 연인의 눈빛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발아래 두려는 냉혹한 군주의 눈빛이었습니다. 그날 밤, 태종은 분노에 찬 왕후를 힘으로 제압하듯 안았습니다. 하지만 그 행위에는 어떠한 애정도, 교감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지배하고 굴복시키려는 권력의 과시일 뿐이었습니다. 원경왕후는 남편의 품에 안겨 수치심과 절망감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때 서로의 몸을 탐하며 미래를 약속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이제 그들의 침전은 사랑이 아닌, 차가운 권력과 날 선 질투만이 오가는 또 다른 전쟁터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랑으로 시작된 균열은 그렇게,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며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 처남들의 죽음, 돌아올 수 없는 강
권력의 속성은 비정합니다. 한번 손에 쥔 힘을 지키기 위해선 때로 가장 아끼는 것마저 베어내야 하는 법. 절대군주를 꿈꿨던 태종에게 가장 경계되는 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아내의 가문, 즉 외척 세력이었습니다. 원경왕후의 남동생들인 민무구와 민무질은 1, 2차 왕자의 난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개국공신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고, 그들의 집 앞은 권세를 좇는 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태종의 눈에 그들의 모습은 과거, 자신을 위협했던 정도전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태종은 칼을 빼 들었습니다. 그는 사소한 트집을 잡아 민무구와 민무질을 탄핵했고, 그들을 유배 보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원경왕후는 맨발로 남편의 편전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녀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전하! 제 동생들은 전하의 수족과도 같은 충신들입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전하도 없으셨을 것입니다! 부디 거두어주시옵소서!" 그녀는 자존심도, 왕후의 체면도 모두 버린 채 애원했습니다. 함께 피를 보며 싸웠던 동지애를, 뜨거운 밤을 나누었던 부부의 정을 믿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태종의 대답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왕후. 이것은 그대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의 기강에 대한 문제요. 외척이 발호하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는 법. 나는 그 싹을 미리 자르려는 것뿐이오." 태종은 그녀를 일으키려 하지도, 눈물을 닦아주지도 않았습니다. 그 모습에 원경왕후는 절망했습니다. 남편의 눈 속에서 그녀는 더 이상 사랑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직 의심과 경계, 그리고 냉혹한 권력욕만이 번뜩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었습니다.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저희 친정은 전하의 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칼이 너무 날카로워져 두려우신 것입니까! 토사구팽이라더니, 사냥이 끝나니 사냥개를 삶아 드시려는 것입니까!" 그녀의 절규는 편전의 기둥을 울렸지만, 태종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1410년, 태종은 유배지에 있던 민무구와 민무질에게 사약을 내렸습니다. 친동생들이 죄인이 되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원경왕후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다가 울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남편이라는 존재는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한때 뜨겁게 사랑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남자가, 이제는 자신의 가문을 파괴한 철천지원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날 이후, 원경왕후는 태종과 같은 침소에 들지 않았습니다. 왕후의 처소 문은 굳게 닫혔고, 그 안에서는 밤마다 왕을 향한 저주와 원망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고 합니다. 한때 조선에서 가장 뜨거웠던 두 사람의 사랑은 그렇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증오와 원망이라는 핏빛으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 애증의 끝, 홀로 남은 왕
친동생들이 남편의 손에 죽은 이후, 원경왕후의 삶은 살아있는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았고, 그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은 채 중궁전에 칩거했습니다. 그녀의 유일한 낙은 아들인 양녕대군을 보는 것이었지만, 훗날 양녕이 세자 자리에서 폐위되는 비극까지 겪으며 그녀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겨나갔습니다. 시간은 흘러 두 사람은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습니다. 태종은 성공한 군주였습니다. 그는 강력한 왕권을 확립했고, 나라의 기틀을 단단히 다졌습니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해 줄 동지도, 아내도 없었죠. 그는 밤마다 텅 빈 침전에서 홀로 잠이 들며, 한때 자신을 향해 뜨거운 눈빛을 보내던 아내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릅니다. 1420년, 원경왕후는 오랫동안 앓아왔던 병이 깊어져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태종은 뒤늦게 아내의 병간호를 하며 지난날을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원경왕후는 죽는 순간까지 태종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아끼던 옷가지와 패물들을 모두 불태우라 명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이 사람이 내게 주었던 그 어떤 것도 함께 묻지 말라. 저승에서까지 그 사람의 흔적을 보고 싶지 않다." 이것이 그녀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차갑게 식어가는 아내의 손을 잡고, 태종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천하를 손에 넣은 절대군주였지만, 정작 한 여인의 마음조차 얻지 못한 패배자였습니다. 그는 아내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베어낸 것은 단순히 외척 세력이 아니라, 자신의 반쪽이자,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였으며,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가장 위대한 동반자였음을 말입니다. 원경왕후가 죽고 난 후, 태종은 급격히 쇠약해졌습니다. 그는 자주 아내의 무덤인 헌릉을 찾아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명하여, 자신의 능을 반드시 헌릉 곁에 만들라고 했습니다. 살아서는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정적이었지만, 죽어서라도 나란히 누워 용서를 빌고 싶었던 것일까요. 결국 원경왕후가 죽은 지 2년 뒤, 태종 역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유언에 따라 두 사람의 무덤, 헌릉과 건원릉은 나란히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권력을 위해 정략으로 만났지만, 그 누구보다 뜨겁게 서로를 원했고, 함께 피의 강을 건넜으며, 결국 서로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고 돌아선 두 사람.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사랑과 권력,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한 편의 장대하고도 슬픈 서사시로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권력과 사랑, 그 무엇도 온전히 가질 수 없었던 태종과 원경왕후. 서로를 향한 칼날이 결국 자신을 베는 상처가 되어버린 두 사람의 이야기는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가장 무서운 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비정한 왕으로 알려진 영조, 그리고 그가 말년에 미치도록 집착했던 한 어린 후궁의 이야기를 『영조실록』을 통해 파헤쳐 보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더 좋은 영상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됩니다.